중국에서 오악(五岳)이란? 가장 중요한 다섯 명산을 묶어 부르는 말로, ····중앙을 대표한다. 단순히 산이 아니라, 중국의 정치·문화·종교적 상징이다.

오악(五岳)특징을 보면

1. 동악 태산(東嶽 泰山, 산둥성 타이안), 높이 1,545m로 황제들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성산이다. 중국의 문명과 정신을 대표하는 산이다.

 

2. 서악 화산(西嶽 華山, 산시성) 높이 1,997m로 절벽과 협곡이 매우 험준해 중국에서 가장 위험한 산으로 불린다. 도교의 성지로 협곡 사이에 세워진 사찰과 잔도가 유명하다.

3. 남악 형산(南嶽 衡山, 후난성) 높이 1,290m로 산세가 수려하고 온화하다. 불교와 도교 사찰이 많아 종교적 성지로 알려져 있다.

4. 북악 항산(北嶽 恒山, 산시성) 높이 2,017m 깊고 아득한 산세로 도교 신앙 중심지이자 절벽에 매달린 듯한 현공사(懸空寺)가 유명하다.

5. 중악 숭산(中嶽 嵩山, 허난성) 높이 1,494m로 산세가 가파르고 웅장하다. 소림사(少林寺)가 위치해 불교와 무술의 중심지다.

 

 

오악(五岳)요약하면, 오악은 단순한 명산이 아니라 중국의 역사·문화·종교를 상징하는 다섯 기둥 같은 산이다.

 

예전에 화산과 숭산을 다녀왔던 터라 이번에는 군산에서 석도국제훼리를 타고 석도(石島)에 도착 그리고 위해(威海)에서 고속열차를타고 태산(泰山)을 다녀왔다.

 

숭산

 

태산의 간식거리

五岳独尊(오악독존)-중국 5위안 지폐 뒷면에는 태산의 풍경과 함께 ‘五岳独尊(오악독존)’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비석

 

 

일관봉(日观峰)해돋이 명소

뒤로 천도와 케이블카가 보인다.

남천문에서 천도를 거쳐 옥항봉으로 가는 길

 

홍문  중천문  남천문  옥황봉까지 약 6,660개의 계단

 

태산(泰山)은 중국 산둥성 타이안시에 위치한 오악(五岳) 중 동악으로, 중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산이다.

높이는 1,545m이며, 역사·문화·종교·자연이 모두 어우러진 세계적 명산으로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자연 복합유산으로 지정됐다.

진시황, 한무제 등 역대 황제들이 천지에 제사를 올리는 봉선 의식(封禪儀式)을 거행한 곳으로 이는 황제가 하늘의 뜻을 받들어 통치를 정당화하는 의식으로, 태산은 중국 정치·문화의 상징적 무대다.

또한 공자, 두보, 이백 등 수많은 문인들이 태산을 노래했고, 산 곳곳에 남아 있는 석각과 비문은 중국 문화유산의 보고다.

옥황봉(玉皇顶) 해발 1,545m,는 태산의 정상으로 일출 명소다.

또한 태산에는 22개의 사찰, 97개의 유적지, 819개의 석각이 남아 있다. 불교와 도교가 공존하는 성지로서 종교적 의미도 크다.

이런 태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2가지 코스가 대표적이다.

홍문궁 코스는 가장 전통적인 등산길로 홍문 중천문 남천문 옥황봉까지 약 6,660개의 계단을 오르는 코스다.

천외촌 코스는 천 외촌에서 버스를 타고 중천문(中天门)까지 차량 이동, 중천문 케이블카 남천문에서 도보로 옥황봉 정상까지 오르는 코스다..

나는 천외촌코스를 택해서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2025년 11월 20일 태산

압록강 철교 와 단교

 

 

대련에 도착하자 날이 어두워졌다.

지하철을 타고 중산광장 (Zhongshan Square) 역에 도착했다.

대련의 중산광장 부근은 금융기관과 대기업 본사가 밀집해 있는 경제 중심지 역할하고 있다.

이곳에 호텔을 구하고 인근 쇼핑센터를 둘러보며 여행자로서 대련의 첫날 분위기를 느껴본다.

중국 랴오닝성 최남단의 해안 도시로, 항만·공업·관광이 발달한 동북부의 대표 항구도시, 지형적으로 삼면이 바다와 맞닿아 해역 활동이 활발하며, 중국 내에서도 살기 좋은 아름다운 해안도시인 것 같다.

러시아와 일본의 역사적 영향으로 유럽풍 건축물이 많고, 도시 곳곳에서 러시아 거리 같은 이국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대련에서 단둥가는 길에 

 

 

안개낀 대련 중산광장

 

 

아침을 먹고 러시아 거리 여행에 나섰다.

중산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아 천천히 걸어서 도심을 가로지르는 전차도 보고 그러다 보니 어느덧 러시아 거리다.

러시아 거리는 1919세기말 대련이 러시아 조계지였던 시기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당시 러시아인들이 지은 건축물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어, 100년 이상 된 러시아풍 건물을 직접 볼 수 있다.

대련의 전차

대련의 러시아 거리 초입

전시된 건축설계도

러시아거리

 

 

대련 러시아 거리는 약 500m 길이에 걸쳐 38동의 러시아·유럽식 건물이 늘어서 있는 테마 거리입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도심 속에서 산책하며 이국적인 건축과 문화를 체험하기에 충분한 공간이다. 2000년대 대련 시 정부가 18천만 위안을 투자해 건축물을 보수, 재장식하여 관광지로 재탄생시켰다고 한다.

고리곳곳 상점에는 마트료시카 인형, 러시아 초콜릿, 소시지 등 러시아풍 상품 판매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 여행을 마치고 단동(丹東)을 가기 위해 대련역으로 향한다.

중국에서 제일 가까운 신의주 쪽 북한을 보기 위해서다.

대련에서 단동(丹東)까지는 고속열차로 약 3시간 3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단동역

 

중국 단동(丹東)은 랴오닝성 남동부에 위치한 국경 도시로,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신의주와 마주하고 있는 곳이다. 중국 최대의 변경도시이자 교통·무역의 요충지로, 역사와 현대가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인구는 약 243만 명(2007년 기준), 과거에는 안동(安東)이라 불렸으며 1965년에 붉은 동방의 도시라는 뜻의 단동(丹東)으로 개명했다.

6·25 전쟁 당시 중국 인민지원군의 주요 집결지였다

단동(丹東) 역에 도착하여 왼쪽으로 1km쯤 걷다 보며 압록강과 단교(斷橋)가 보인다.

압록강과 단교(斷橋)

. 단교(斷橋)

 

 

특히 압록강 단교(斷橋)는 중국 단동과 북한 신의주 사이를 잇던 철교가 전쟁으로 절반가량 끊겨 남은 흔적으로, 한국전쟁의 상처와 국경 도시의 특수한 분위기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상징적 명소이다. 현재는 일부 구간이 보행 관광로로 개방되어 강 위를 걸으며 역사와 풍경을 체감할 수 있다.

압록강 단교(斷橋)의 입장료는 성인 기준 약 30위안(한화 약 6000) 정도이며, 운영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다

나는 이곳에서 단교를 걷고 압록강변의 유람선을 타보기로 했다.

압록강 유람선 가격은 일반적으로 성인 기준 약 60위안(한화 12,000원)이다.

운행 시간은 약 30~40분 정도.

배 위에서 북한 시가지와 생활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압록강 유람선 타는 곳

단동 압록강 유람선 타는 곳

유람선과 강건너 북한 신의주

북한의 건물

단교끝과 북한의 호텔

단교 관람하는 관광객

전쟁무기를 관광품한 술들

북한건물

 

신의주항

북한택시

유람선에서 파는 북한 돈

조선족 의상 기념촬영하는 관광객

야간의 압록강 철교 조명

광장에서 춤추는 주민들

대동강맥주,평양맥주 압록강맥주 11도

 

관광을 마치고 인근 식당에서 11도짜리 평양맥주와 대동강맥주에 냉면을 먹고 단둥에서 하루를 마친다.

아침에 일어나 호텔밖을 보니 비가 내린다..

압록강 단교(斷橋)에 나가보니 단교(斷橋) 보행 관광도 중지다.

단동역 앞에서 버스를 타고 호산장성(虎山長城)으로 향한다.

호산장성(虎山長城)은 중국 랴오닝성 단동시에 위치한 만리장성의 동쪽 끝자락으로,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맞닿아 있는 국경 관광지이다.

고구려 시기에 호산 일대는 고구려의 천리장성 일부로,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중요한 방어선이었다. 당시에는 박작성이라 불렸다.

명나라 시기에는 명나라가 북방 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장성을 확장하면서 호산에 성벽을 쌓아 동쪽 끝을 형성했다.

명나라 시기에 축조된 성벽을 기반으로 1992년에 복원되었으며, 역사적·지리적 의미가 매우 큰 장소이다.

 

성벽 길이는 약 1,250m, 등산로(판자길) 2~3km , 12개 성루가 남아 있으며 내부 관람도 가능하다고 한다.

버스에서 내려 호산장성(虎山長城) 입구에 도착하니 폐쇄다.

중국인들도 어리둥절한 모양이다.

 

호산장성(虎山長城)

중국 G228 국도의 단둥 기점은 압록강 인근 호산장성(虎山长城) 부근에 위치하며, ‘0 km 출발점 조형물

장성의 끝과 도로의 시작”이라는 상징성

 

호산장성(虎山長城)

단둥역 앞에는 마오쩌둥(毛澤東) 동상

고려거리 

고려거리

압록강변에서 고기잡는 주민들

사진촬영중인 관광객들

단둥역 앞에는 마오쩌둥(毛澤東) 동상

 

 

호산장성(虎山長城)은 특별한 휴관일 없이 매일 개방되지만, 날씨나 관리 사정에 따라 임시 폐쇄될 수 있으므로 방문 전 확인이 필요하다고 한다.

다시 압록강 단교부근으로 돌아와 고려 거리등을 돌아보고  강 건너 적막한 북한 땅을 바라보며 단둥에서의 이틀째 일정을 마친다.

이제 중국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아침에 호텔에서 조식을 해결하고 단동역 앞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단동훼리(Dandong Ferry)가 운행하는 단동항(丹东港)으로(丹东港) 향한다.

버스는 2-3일에 한번 운행하는 배편이라  그런지 직접 가지 않고 단동항(丹东港) 근처에(丹东港) 내려준다.

다시 택시로 갈아타고 여객선터미널이 있는 사무실로 향한다.

도착해서 보니  의자 외 위락시설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국제 여객선 터미널이라고는 하지만  창고 비슷한 건물에 관리자 1명이다.

오후 3시쯤, 탑승자를 태우고 항구 안에 있는 사무실로 내려준다.

이곳에서 탑승권구입과 탑승 절차가 이루어진다.

다시 버스를 타고 단동훼리(Dandong)에 도착, 승선한다.

오후 5, 배가 움직이자 2척의 예인선이 2만 4천 톤급 카페리인 단동훼리(Dandong)를 부두밖으로 밀어내면서  단동훼리(Dandong)는 인천항으로 향한다.

멀리 눈앞에  철산 앞 기봉리 섬들로 추정되는 북한 땅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이번 중국여행은 끝이 났다..

 

 단동훼리(Dandong)를 밀어내는 예인선

철산 앞 기봉리 섬들로 추정되는 북한땅

 

인천앞 일출

 

 

 

2025년 8월27일 인천

아침에 눈을 뜨니 폭우가 호텔창가를 때린다.

오늘 백두산 서파방문은 어려울 것 같다.

배낭을 챙겨 장백산역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장춘(长春, Changchun)으로 향한다.

만주의 드넓은 밭

장춘시

장춘시

장춘(长春, Changchun)역

 

장춘(长春, Changchun)은 지린성의 성도로 인구는 약 910만 명이며 북방의 봄의 도시로 온화한 기후와 녹지로 유명하다.

중국 최초의 자동차 산업 중심지(제일 자동차그룹(FAW) 본사)가 있으며 영화제작소가 있어 영화도시로도 불린다.

과거 만주족의 수도였던 만큼 만주국 황궁등 역사적 건축물이 남아있다.

나는 장춘북역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고 위만황궁박물원을 보기 위해 황궁역으로 향한다.

 

위만황궁박물원(伪满皇宫博物院)입구

위만황궁박물원(伪满皇宫博物院)에서 바라본 장춘시

위만황궁박물원(伪满皇宫博物院)

 

만주국 황궁(滿洲國皇宮)은 1932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이 세운 괴뢰국 만주국의 궁전으로, 마지막 청 황제 푸이가 거주하던 곳이다.

1945년 소련군이 만주를 점령하면서 궁전의 대부분이 파괴되어 1962년 중국정부가 일부를 복원하여 위만황궁박물원(伪满皇宫博物院)으로 개관하였다.

가짜 만주국 황궁이라는 뜻이다.

위만황궁박물원은 일본 관동군의 만주 점령 정책, 만주국의 역사, 푸이의 생활공간 등을 전시하고 있다.

이곳에서 관람을 마치고 하얼빈(哈尔滨, Harbin)행 고속열차에 올랐다.

 

 

하얼빈(哈尔滨, Harbin)서역

하얼빈(哈尔滨, Harbin)역 앞 광장

하얼빈(哈尔滨, Harbin)역  안중근 기념관

하얼빈(哈尔滨, Harbin)역

하얼빈(哈尔滨, Harbin)역

 

헤이롱장성의 성도이며 세계적인 빙설축제와 러시아풍 건축으로 유명하다.

인구는 1000만 명의 대도시로 정치, 경제, 문화이자, 경제, 북방 무역의 역할을 한다.

러시아 문화와 건축이 깊게 남아있어 중국 속에 작은 유럽으로 불린다.

주요 관광명소로는 중앙대가(유럽풍 건축과 상점이 늘어선 거리)와 성 소피아 성당(러시아 정교회 건축의 대표적 유적) 이 있다.

 

그러나 내가 하얼빈을 찾은 이유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安重根义士纪念馆)을 보기 위해 서다.

하얼빈서역에 도착, 하얼빈역으로 20여분 택시를 타고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도착하니 벌써 문이 닫혔다.

인근 호텔에서 숙식을 하고 아침 9시에 다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찾았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安重根义士纪念馆)

안중근 의사 기념관(安重根义士纪念馆)

안중근 의사 기념관(安重根义士纪念馆) 관람자

안중근 의사 휘호

하얼빈에 도착한 이토 히로부미

이토 히로부미 세계 적격뉴스

안중근 의사가 저격한 장소 (세모)- 이토 히루부미 피살장소 (네모)

안중근 의사 공판관경

안중근 의사 기념관(安重根义士纪念馆)

안중근 의사 31세 순국

 

벌써  안중근 의사 기념관 문 열기를 기다리는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하얼빈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19091026일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역사적 현장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곳입니다.

현재는 하얼빈역 내에 위치하며, 독립운동의 의미와 안중근 의사의 삶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운영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여권을 제시해야 입장이 가능하다.

전시내용은 당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장소를 중심으로 꾸며져 있으며 전시장 내와 전시관 창 너머로 당신의 의거장소를 표시하여 현실감 있는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유물 전시로는 안중근 의사의 사진, 서신, 관련 문헌, 당시 총기 모형 등과

만주와 하얼빈의 독립운동사, 일본 제국주의 침략사, 동양평화론 관련 자료등 한국인뿐 아니라 중국인·외국인에게도 독립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알리고 있다.

이곳에서 관람을 마치고 이제 하얼빈 관광에 나섰다.

먼저 중앙대가로 향한다.

 

 

 하얼빈(哈尔滨, Harbin)역

 하얼빈(哈尔滨, Harbin)역 정면에서 왼쪽

하얼빈 중앙대가(中央大街)가는길에

흑룡강일보 사옥

 

 

하얼빈 중앙대가(中央大街)가는 대로

하얼빈 중앙대가(中央大街)앞 로타리

하얼빈 중앙대가(中央大街)앞

하얼빈 중앙대가(中央大街)

하얼빈 중앙대가(中央大街)

러시아 상점

러시아상점에진열된인삼

러시아 술

러시아 향수

하얼빈 중앙대가(中央大街)

하얼빈 중앙대가(中央大街)

하얼빈 중앙대가(中央大街) 헌혈의집

러시아 상점

하얼빈 전승기념비

송화강변의 시민

송화강의 유람선

송화가을 건너는 케이플카 타는곳

생맥주판매가게

 

중앙대 가는 하얼빈 역 뒤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눈길에 흑룡강성 신문사 건물도 볼 수 있다.

역에서 약 1 km 정도이다.

하얼빈 중앙대가(中央大街)는 약 1.4km 길이의 보행자 전용 거리로, 러시아·유럽풍 건축과 다양한 먹거리, 쇼핑, 문화가 어우러진 하얼빈의 대표 명소다.

하얼빈 시내 중심으로 송화강, 소피아 성당, 하얼빈역과, 연결되는 핵심 거리

1898년 조성, 1928중앙대가로 명칭 변경. 중국 최초의 보행자 거리이자 국가 AAAA급 관광지다.

러시아풍, 바로크, 르네상스 등 다양한 유럽 건축양식이 보존되어 있어 동방의 파리라 불린다.

나는 이 거리를 따라 천천히 관광을 한다.

러시아풍과 유럽 건축물속에 말우유 아이스크림(马迭尔冰棍)을  먹으며 러시아식 빵·커피, 양꼬치·닭꼬치, 꿔바로우(동북식 탕수육), 하얼빈 맥주 가계를 구경하다 보니 벌써 송화강이 펼쳐진다.

송화강은 백두산천지에서 발원하여 약 1,927km의 아무르강의 가장 큰 지류로 중국 동북부 헤이룽장성 하얼빈 시를 관통하는 강이다.

하얼빈의 도시 형성과 발전을 이끈 어머니의 강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가끔 수년에 걸쳐 홍수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단다.

 

 

성 소피아 성당(圣索菲亚大教堂)

성 소피아 성당(圣索菲亚大教堂)

성 소피아 성당(圣索菲亚大教堂)에서 사진촬영하는 시민들

 

성 소피아 성당(圣索菲亚大教堂)에서 휴식하는 시민

성 소피아 성당(圣索菲亚大教堂)광장에서 프로포즈 공연

성 소피아 성당(圣索菲亚大教堂)광장에서 프로포즈 공연

성 소피아 성당(圣索菲亚大教堂)광장에서 프로포즈 공연

성 소피아 성당(圣索菲亚大教堂)광장에서 프로포즈 공연후 기념촬영

성 소피아 성당(圣索菲亚大教堂)광장에서 

성 소피아 성당(圣索菲亚大教堂)광장거리

성 소피아 성당(圣索菲亚大教堂)광장거리

성 소피아 성당(圣索菲亚大教堂)광장거리 간판

성 소피아 성당(圣索菲亚大教堂)야경

성 소피아 성당(圣索菲亚大教堂)야경 사진촬영

 

이곳에서 다시 성 소피아 성당(圣索菲亚大教堂)으로 향한다.

 

성 소피아 성당(圣索菲亚大教堂)은 하얼빈을 대표하는 러시아 정교회 건축물로, 1907년에 건립된 비잔틴풍 성당이다.

 

1907년 러시아 제국 동시베리아 제4보병사단 군종 교회로 건립되었고,

1923년 현재 위치에서 다시 세워져 1932년 완공되었다.

건축 양식은 비잔틴풍 라틴 십자가 평면 구조로 높이 약 53m, 중국 내 최대 규모의 정교회 건축물 중 하나이다.

역사적으로 제정러시아의 중국 침공과 하얼빈 근대사의 증거로 평가되며 문화혁명 시기에는 창고·연습장으로 쓰였으나 현재는 건축예술관으로 복원되었다.

성 소피아 성당(圣索菲亚大教堂)에 도착하자 관광객과 사진 찍기 위한 젊은이로 넘쳐난다.

성당 건물에 어울리는 천사의 의상이 대세다,

흰 천사, 검은 천사, 할머니천사등.

이리저리 성당의 아름다움과 천사들을 감상하고 있자 여러 무리 들이 등장한다.

웬 공연, 30여 분간 다양한 군무가 펼쳐지는가 싶더니  한 남자가 반지를 들고 사랑의 프러포즈를 한다..

 

100여 명 무희를 동원하여 프로포즈라?

결혼에서 행복하게 잘 살아라.

호텔로 돌아와서 하얼빈에서의  두 번째 밤을 맞이한다.

송화강시민방공승리 기념탑- 홍수높이를 기록하고있다.

송화강시민방공승리 기념광장

송화강

원앙호

원앙호-송화강인근공원

하얼빈 제1중학교

수퍼

 

 

아침 일찍 호텔을 나와 중앙대가 (中央大街 )로 나선다.

이른 아침이라 한가하다.

천천히 걸어 송화강가를 돌아보고 인근 공원을 산책하고  택시를 타고 호랑이를 보기 위해 하얼빈 동북호림원(東北虎林園)으로 향한다.

 

 

동북호림원(東北虎林園)

동북호림원(東北虎林園)-차량으로 관람

하얼빈 동북호림원(東北虎林園)은 세계 최대 규모의 시베리아 호랑이 보호구역으로,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송북구(松北区)에 위치하고 있다.

1996년 일반에 개방하였으며 면적은 약 144, 중국 국가임업국 지정 동북호랑이 번식·사육 기지다.

호랑이 개체수는 100마리 이상 시베리아 호랑이(동북호랑이) 사육하고 있다.

희귀 동물로는 백호 8마리, 설호 1마리, 백사자 2마리, 라이거 2마리, 흑표범 3마리, 아프리카 사자 20마리 등 다양한 맹수가 있다.

관람을 마치고 하얼빈북역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선양(沈阳)으로 향한다.

 

 

 

선양((沈阳)은, 동북 3성 가운데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다. 역사적으로는 청나라의 발상지이자 근현대사의 무대였고, 오늘날에는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일제시대 봉천은 청나라 시기, 황제를 천자(天子)’라 부르며 황제를 받든다는 뜻에서 봉천(奉天)’이라 명명하며 청나라 누르하치가 선양(沈阳)을 수도로 삼으면서 성경(盛京)’이라 불렸고, 이후 봉천으로 개칭했다.

선양은 세기·군사 중심지로 일본이 만주사변(1931)을 일으킨 곳으로, 당시 봉천사변이라고도 불렸다.

또한 장쭤린·장학량· 등 동북 군벌의 본거지다.

봉천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에 도시 이름을 다시 선양(沈阳)으로 환원.

오늘날에는 랴오닝성의 성도로, 동북 3성의 중심 도시로 발전하였다.

 

고대에는 고조선·고구려·발해의 영토였으며, 이후 요···명 왕조의 지배를 받았고, 1625년, 누르하치가 수도를 옮기며 성경(盛京, Mukden)’이라 불렸다. 청나라의 초기 수도로

청나라가 베이징으로 천도하기 전까지 정치·문화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1931년 일본 관동군이 ‘9·18 사건(만주사변)’을 일으킨 곳으로, 중국 항일운동과 근현대사의 중요한 무대이기도 하다.

 

 

 

선양(沈阳) 북역에서 선양고궁 (沈阳故宮)으로 향한다.

선양 고궁에 도착하자 날이 어두워진다. 

고궁 근처의 예약한 호텔로 선양에서의 첫날을 보낸다.

선양((沈阳)북역

선양((沈阳)북역 광장

선양((沈阳)관광안내도

선양((沈阳)야경

계란빵장수의 티톡?

선양((沈阳)중심가

선양((沈阳)중심가

중심묘 안내판

중심묘

선양고궁(沈阳故宮)

대정전(大政殿): 황제가 정사를 보던 중심건물

 

아침 일찍 조식을 먹고 배낭을 메고 선양고궁(沈阳故宮)으로 향한다.

벌서 기다란 줄이 형성되어 있다.

 

선양고궁(沈阳故宮)은 중국 랴오닝성 선양에 위치한 청나라 초기 황궁으로, 베이징 자금성과 함께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궁궐 건축물 중 하나이다.

건립 시기는 1625년 누르하치가 수도를 선양으로 옮기면서 건설 시작, 1636년 홍타이지가 완공했다.

청나라가 베이징으로 천도하기 전까지 황제가 거주하고 정사를 보던 궁궐로 당시에는 성경궁(盛京宮)’이라 불렸으며, 청나라 발상지의 상징이다.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규모는 약 6, 건물 70여 동으로 베이징 자금성의 약 1/12 크기이다.

한족 궁궐 건축과 만주족·몽골족 전통이 혼합된 독특한 양식이다.

대표 건물로는 대정전(大政殿): 황제가 정사를 보던 중심건물과 봉황루(鳳凰樓): 황제의 연회와 의식 공간, 소황궁(小黃宮): 황실 가족 거주 공간이 있다.

장 씨 수부 박물관(张氏帅府)

장 씨 수부 박물관(张氏帅府)의 응접실

장 씨 수부 박물관(张氏帅府)

장학량(张学良)의 관저 직무실

선양고궁(沈阳故宮)에서 촬영하는 시민들

심양중심가의 보석판매장의 공연자

이곳에서 관람을 마치고 걸어서 장 씨 수부 박물관(张氏帅府)으로 향한다.

장 씨 수부 박물관(张氏帅府)은 중국 랴오닝성 선양에 위치한 동북 군벌 장쭤린(张作霖)과 그의 아들 장학량(张学良)의 관저로, 현재는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장쭤린(张作霖)은, 1928년 일본 관동군의 폭탄 공격으로 사망(‘황구툰 사건’)하였고  장학량(张学良)은 그의 아들로, 항일운동에 참여했으며 1936서안사변을 일으켜 장제스를 압박해 항일 전선을 형성하였기에 장 씨 수부는 이 부자의 생활공간이자 정치적 중심지였기 때문에, 중국 근현대사의 격동기를 직접 담고 있는 장소이다.

이곳을 둘러보고 다시 선양북역에서 대련으로 향한다.

 

심양북역 안

 

 

 

 

2025년 08,23. 沈阳

백두산 천지(선전 사진)

 

이번 여행은 백두산 천지를 보기 위해 연변으로 간다.

20여 년, 한라산, 지리산등 많은 산을 올라 봤으나 백두산은 높이도 높이 이거니와 단순한 산을 넘어, 민족의 정체성, 신화적 기원, 그리고 지리적·생태적 중심축으로서 깊은 상징성을 지니고 있는 민족의 영산(靈山)이다. 그래서 한 번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천지를 눈으로 꼭 보고 싶었다..

 

백두산은 한민족의 시원(始原)을 상징하는 산으로,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었다는 태백산이 바로 백두산으로 단군이 태어난 곳으로 여겨지며, 고조선·부여·고구려 등 고대 국가의 건국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산이다.

북한에서는 백두혈통의 상징으로, 남한에서는 민족의 근원으로 인식되며, 남북 모두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상징적 공간이다.

 

백두대간의 출발점으로, 한반도 산줄기의 근원지로 여겨지며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산맥의 뿌리다.

압록강, 두만강, 송화강이 백두산에서 발원하며, 동북아시아의 수자원 흐름을 결정짓는 핵심 지점이다.

 

먼저 인천을 출발한 비행기는 인천국제공항(ICN)에서 연변 조선족 자치주 중심 도시인 연길공항(YNJ)까지는 약 1,050km로 약 2시간 10~ 2시간 30분 걸린다.

비행기가 연길 공항에 접근하자 승무원들이 창문을 내리라고 한다. 군사시설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란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빠져나오자 이곳이 중국인가 싶을 정도로 건물에는 커다란 한글과 한자 간판이 병기돼 눈길을 끌고 있다.

말로만 듣던 연변 조선족 자치주 (延边朝鲜族自治州) 연길시 (延吉市)이다

연길 공항

 

 

연길시 (延吉市)를 먼저 소개하면 220만 명(2020년 기준)의 연길시는 민족구성이 조선족 약 32%, 한족 약 64%, 만주족과 몽골족 등 기타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19세기 중반부터 조선인들이 두만강을 넘어 이주, 20세기 초에는 조선인이 지역 인구의 70%을 차지하여 1952년 조선족 자치주로 출발, 1955년 자치주로 승격돼 매년 93일 자치주 성립기념일을 지내고 있으나 한국과 중국의 대도시로 인구유출이 심해 조선자치주의 명색을 근근이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연길시에서 백두산을 가기 위해 차량을 묻자 조선족 아저씨는 여기서 직접 가는 버스는 없고 터미널에서 알아봐야 한다며 한족들이 운영하는 택시를 타지 말고 시내버스를 타고 가라고 알려준다.

공항을 나서 왼쪽으로 100여 m 가면 버스 정류장이 있는데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5에서 내리면 그 앞이 연길 버스터미널이란다.

조선족 아저씨의 말대로 버스를 기다리자 버스가 도착한다 버스요금은 2, 버스는 10여분을 달려 연길역을 지나 5(오 중학교)에 도착한다.

연길터미널에 도착하자 터미널이 설렁하다.

오후 6시경인데.

터미널 옆 조선족 청년여행사의 간판을 보고 들어가자 한 직원이 조선말로 조금만 기다리란다.

7-8명의 직원들이 컴퓨터 앞에서 뭔가 열심히 열중하고 있다.

630분이 지나자 어떤 직원은 박수를 치고 어떤 직원은 인상을 찌푸린다..

뭐 하는 거지 라는 생각일 들 때쯤 직원이 무슨 일 때문에 왔냐고 묻는다.

백두산을 가기 위해서 왔다고 대답하자 언제냐고 물어, 내일 갈 수 있냐고 말하자 웃으며 절대 불가능하다며 조금 전 6시 30분에 백두산 예매에 직원들이 동원돼 인터넷 예매를 했다며 그것도 5일 뒤 백두산 예매표란다.

내일 갈 수 있는 방법을 물의 니 절대 불가란다.

뭐 이런 낭패가??

여행사를 빠져나와 터미널 주차 관리원에게 백두산 이도백하(二道白河)

가는 버스를 묻자 내일 아침 6시에 오란다.

 

 

연길 버스터미널

 

인근 식당에서 연길 냉면(18)을 먹고 터미널 근처 숙소에서 백두산을 가기 위한 연변에서의 첫 일정을 마무리한다.

아침 5시 숙소를 나와 연길 재래시장을 방문하기 위해 택시를 탔다.

10여분쯤 지나자 여기가 연길 서시장이라고 내리란다.

도착하여 보니 문이 굳게 다쳐있다 이곳의 재래시장은 아침 일찍 열리지 않나 보다.

연변시내를 둘러보고 연길대교를 넘어 다시 연길 터미널로 돌아왔다.

 

연변시 풍경

연변 사진관  안내 사진진

연변 서시장 건물

연변 거리 표지판

연변 거리

 

연변일보 건물

 

연길 대교

연길대교에서 바라본 연변 도시풍경

연길대교에서 바라본 연변 도시풍경

 

연길 버스터미널에서 6시에 출발한 버스는 장백산 북파(北坡) 관광의 거점 도시인 이도백하(二道白河)를 향해 달린다.

버스창밖에 펼쳐지는 농촌 풍경은 한국과 다른 것이 없다,

다만 한국처럼 벼가 아닌 옥수수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농촌 풍경

농촌의 상가

옥수수밭

 

이도백하(二道白河)거리

이도백하(二道白河)거리

백두산 매표소 상가들

 

 

3시간여를 달려 이도백하(二道白河)에 도착한다.

이도백하(二道白河)에서 백두산은 가까운 거리의 산 일 것이라고 믿었던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평지에 가까운 이도백하(二道白河)에서 아무리 봐도 백두산을 보이지 않는다.

일단 백두산을 입장하기 위한 표를 구하기 위해 한국에서 20년간 일하고 어제 한국에서 왔다는 이도백하(二道白河)가 고향이라는 버스에서 만난 조선족 아저씨를 데리고 매표소로 갔다.

결과는 불가였다.

이미 표가 매진이라 없다고 한다.

방법을 찾기 위해 모든 노력을 했으나 불가능하단다.

중국말을 구사하는 조선족도 혀를 내 드룬다.

 예전에는 이곳이 조선족 마을이라 100%가 조선족들이었는데 이젠 한족이 80%를 차지하고 있어 자신도 대화가 어렵단다.

10시부터 11시까지 표를 구하지 못해 아침을 굶은 터라 인근식당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조선족 아저씨가 식당주인에게 입장권을 구할 방법을 묻자, 식당 여주인이 가서 적극적으로 구하면 구할 수 있다고 알려준다고 한다.

식사를 마친 조선족 아저씨가 나에게  다시 백두산 매표소를 가자고 한다.

매표소에서 다시 입장권을 구입을 시도한다.

조선족 아저씨왈 이분이 한국에서 와서 5일 동안 백두산 표를 구입하려고 인터넷예매를 시도했으나 한국인이라 구할 수 없었다고 오늘 백두산을 보지 못하면 내일 한국으로 돌아갔다며 중국말로 억지를 부렸다고 한다.

어떻게 된 일이지 오후 2시 정도가 되면 어쩌면 표를 구 할 수 있다고 전화번호를 달란다. 전화가 가면 표가 있고 없으며 없다고 기다리란다.

조선족 아저씨가 본인의 전화번호를 주고 1시간쯤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

이제 지쳤는지 조선족 아저씨도 할 일이 있며 돌아간다고 한다.

매표소 여직원에게 자신은 돌아간다며 나를 남겨둔 채 간다.

오후 1시 30분쯤 되자 매표소 여직원이 조용히 다가와 같이 가잔다.

사무실로 안내해서 260위안(한화 51000)에 입장원을 구입했다.

자기들 말로는 취소자가 생겨 취소자 표라는 듯한 표현을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렵게 구입한 표가 나에게는 감지 덕지하다.

표를 구하자 이제부터는 중국관광객과의 인파전쟁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는 중국인의 새치기와 밀어붙이는 인파로 어렵사리 백두산 버스에 올랐다.

30여분을 밀림 같은 수목사이를 달리자 중간 주차장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목적지를 결정한다..

1코스는 정상, 2코스는 장백폭포다,

정상코스의 인파를 따라 7-8명 정도가 탈 수 있는 4륜구동의 미니지프차를 타고 또다시 20여분 정도를 굽이굽이 산길로 달린다.

밀림 같은 같은 수목지대를 벗어나자 확 트인 산봉우리가 우뚝 서 있다.

버스에서 내리자 2000m 고지대의 찬바람이 온몸을 강타한다.

서둘러 바람막이 옷을 꺼내 입고 보니 아래는 백두산 대평원의 산림이 펼쳐지고 100여 m 위로는 천지를 보려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백두산 북파 주차장

 

 

백두산천지

백두산 아래 

백두산 아래 펼쳐지는 풍경

북파 주차장과 대산림평원

북한쪽 동파

계곡 뒤로 북한방향인듯

100m을 올라 밀려오는 구름 사이와 인파 사이로 백두산 천지를 보인다.

기분 탓일까, 어렵사리 올라와  눈앞에 펼쳐진 백두산은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명산다운 자태을 뽐내고 있다.

정상부에는 직경 약 5 km, 수심 최대 약 850 m 규모의 칼데라인 천지(天池)가 형성되어 있고 주봉인 2,744m 장군봉(将军峰)이 떡 버티고 있다.

 

백두산은 백산, 태백산, 불함산, 장백산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으며, 삼국유사, 제왕운기 등 고대 문헌에 자주 등장하다.

10세기경 밀레니엄 분화로 알려진 대분화가 있었고, 문헌·지질 기록으로 946년 전후(혹은 969±20)로 추정된다. 이 분화는 동북아 전역에 테프라를 낳을 정도로 거대했다고 한다

유네스코가 20243, 이곳 백두산(장백산)을 세계지질공원으로 공식 인증했다.

인파 속에 멋진 백두산을  마음껏 사진을 찍으며 중간주차장으로 내려와 다음 장소인 장백폭포로 향한다.

백두산 천지에서 내려 가는 길

북파 주차장의 선전 사진

내려가는길

백두산천지에서 내려가는 길

백두산천지에서 내려가는 길

백두산천지에서 내려가는 길 이곳부터 산림지대로 접어든다

중간주차장의 선전용 백두산천지 사진

 

장백폭포가는 용암지대

 

장백폭포

 

장백폭포와 관광객

장백폭포옆 작은 폭포

장백폭포에서 내린는 폭포수-송화강으로

장백폭포 용암지대

나무뿌리를 이용한 포토존

장백폭포 안내도

온천물 체험 시설

백두산 일출 선전사진

백두산 암석 설명하는 

 

버스에서 내려 폭포까지 이어지는 탐방로는 계단과 숲길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간중간 유황 온천과 개울을 지나게 된다.

장백폭포는 백두산 천지에서 흘러나온 물이 달문을 지나 천문봉과 용문봉 사이의 완만한 지형을 따라 흐르다가, 68m 높이의 수직 절벽 아래로 떨어지며 형성된 웅장한 폭포다.

 

백두산 북파 입구에서 가까운 곳에 있으며, 화산지형으로 독특한 풍경 속에 백두산 천지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폭포가 장관을 이루며, 이후 송화강으로 흘러들어 간다고 한다.

장백폭포를 구경하며 내려오자 어둠이 깔려온다.

이도백하(二道白河)에 도착하여 고마움을 주었던 조선족 아저씨를 찾아 인시를 하려 했으나 벌써 취침 중이란다.

식당여주인에게 그분이 오시면 맥주라도 대접하라고 맥주값을 주고 숙소로 향한다.

백두산 일정의 첫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숙소 근처에서  저녁을 먹으며 행복한  하루를 마친다.

 

 

2025년 8월 19일  백두산 북파

시기리아 사자 바위(Lion’s Rock)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툭툭이를 타고 담불라 석굴사원(Dambulla Cave Temple)으로 간다.

툭툭이기사는 담불라 석굴사원 입구 매표소에 내려주고 관람이 끝나면 담불라 황금사원(Golden Temple of Dambulla) 앞에서 기다린다고 한다.

담불라 석굴사원(Dambulla Cave Temple)에서 바라본 전경

 

매표소에서 2000루피에 매표를 하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석굴사원이 보인다.

석굴은 370m 높이의 바위산 중턱(180m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올라가는 길에는 원숭이들과 푸른 숲의 전망이 펼쳐진다.

석굴 앞에서 배낭을 맡기고 신발을 벗고 사원 안으로 들어간다.

 

담불라 석굴사원(Dambulla Cave Temple)은 기원전 1세기, 아누라다푸라 왕국의 발라감바(Valagamba) 왕이 남인도 타밀족의 침략으로 왕위를 잃고 도망쳐 담불라의 바위산에 은신뒤 15년 후 왕위에 복귀,

자신을 숨겨준 이 바위산에 감사의 뜻으로 석굴사원을 조성했다고 한다.

이때 만들어진 두 개의 석굴이 오늘날 담불라 석굴사원의 시작이다.

담불라 석굴사원(Dambulla Cave Temple)

 

담불라 석굴사원(Dambulla Cave Temple)

 14~15m 길이의 와불상

 14~15m 길이의 와불상 상반신

 

 담불라 황금사원(Golden Temple of Dambulla) 

 

링가리 시라라 미디어 네트워크 건물

 

 

5개의 석굴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석굴마다 불상과 벽화가 가득하다.

내부에는 157개의 불상, 3명의 왕상, 4개의 힌두 신상이 있다.

 

가장 큰 석굴에는 14~15m 길이의 와불상이 있고, 2석굴에는 60개 이상의 불상과 벽화와 제3석굴의 캔디 양식 벽화는 눈길을 끈다.

벽화에는 부처님의 생애, 첫 설법, 유혹 장면 등이 묘사되어 있다.

1991,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관람을 마치고 담불라 황금사원(Golden Temple of Dambulla) 쪽으로 하산한다.

황금사원은 거대한 금색 좌불상이 인상적이며, 2000년경 일본 불교 단체의 후원으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다시 툭툭이를 타고 시기리야(Sigiriya)로 간다.

담불라에서 시기리야(Sigiriya)까지는 약 17km 정도로 30여분 걸린다.

입장료는 외국인 36$(환화 약 50000원), 현지인 150루피(한화 600-700원) 정도다.

 

시기리야(Sigiriya) 건립의 역사적 배경을 보면,

5세기경 카사파 1(Kassapa I)가 아버지를 살해하고 왕위를 차지한 뒤, 이복동생 목갈라나의 복수를 피하기 위해 시기리야 바위 정상에 요새를 건설했다.

바위 정상에는 왕궁, 아래에는 정원과 해자, 벽화, 거울의 벽 등이 조성되어 있었고, 당시의 예술과 건축 기술이 집약된 공간이다.

왕의 사망 이후 이곳은 불교 수도승들의 거처로 사용되다가 점차 폐허가 되었고 20세기 초 영국 고고학자들에 의해 재발견되었다고 한다.

물의 정원(Water Gardens

 

 

 

윗 사진  바위안에 그려진 벽화

 

 

돌의 정원(Boulder Gardens)

 

시키리아 사자 바위(Lion’s Rock)를 오르기 위해서는 매표소 입구에서 물의 정원(Water Gardens)인 대칭적으로 설계된 고대 정원과 분수 구역을 지나며 시작된다.

그다음 돌의 정원(Boulder Gardens)인 바위 사이를 지나며 점점 경사가 높아진다.

그리고 계단식 정원(Terraced Gardens) 거쳐, 사자의 문(Lion’s Gate) 이르게 된다.

거대한 사자의 발 조각 사이로 1200개 철제 계단을 따라 정상 왕궁터(Palace Ruins) 이른다..

 

계단식 정원(Terraced Gardens) 

 

사자의 문(Lion’s Gate)

사자의 문(Lion’s Gate)

 

 

시기리아 정상

왕궁조감도

 

\

왕궁의 나무(무더위 속에 관광객이 머무는 곳)

 

 

왕궁에서 본 시기리아의 정원과 해자

 

 

왕궁의 물 조달 저수지

 

정상 왕궁터에는 수영장, 옥좌, 정원 유적이 남아 있으며, 360도 파노라마 뷰가 펼쳐진다

다시 관람을 마치고 사자발 조각 아래에서 왼쪽으로 나선형 철제 계단을 올라가면 프레스코 벽화 구역(Sigiriya Frescoes) 5세기 여인들의 벽화를 볼 수 있다.

덧칠해진 여인들 

천상의 여인들(Maidens of the Clouds) (압사라 또는 궁중 여인으로 추정)

내려 가는 길

 

특히 프레스코 벽화(Sigiriya Frescoes) 구간에서 바위 절벽에 그려진 아름다운 여인들의 그림을 볼 수 있는데 원래 500명 이상이었으나 현재는 18점만 남아 있다. 아름다운 여인은 왕의 시녀 또는 요정 압살라로 추정된다고 한다.

벽화가  지원진 이유는 수백 년 동안의 풍화, 습기, 곰팡이, 승려들의 수행에 부적절하여 지워지거나 덧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시기리야 벽화는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예술작품으로, BBC 선정 살아서 꼭 가봐야 할 장소 50에도 포함된 바 있다.

또한 시기리야(Sigiriya)는198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식 등재됐다.

 

다시 시기리아에서 담불라로

 

 시기리야 여행을 마치고   담불라로 돌아와  버스를타고  쿠루네갈라(Kurunegala) , 거쳐 푸탈람(Puttalam)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해안선을 따라 네곰보를 거쳐 콜롬보 (Colombo)  에 도착했다.

 

콜롬보(Colombo)는 16세기부터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며 식민지 시대의 건축물과 도시 구조가 지금도 남아 있다.

현재는 스리자야와르데네푸라코테가 법적 수도지만,

대통령 관저, 대법원 등 주요 기관은 여전히 콜롬보 (Colombo)에 위치 있고 스리랑카의 최대 도시이자 행정·사법 수도로,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스리랑카 여행의 시작점이자 끝점으로 자주 선택되는 도시이며, 인근에 반다라나이케 국제공항이 위치해 있어 접근성도 뛰어나다.

 

 

 

 

콜롬보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페타 시장(Pettah Market)과 인도양을 따라 펼쳐진 해안 산책로와  일몰 명소인 갈레 페이스를 돌라보고  반다라나이케 국제공항으로 향하며 스리랑카 여행을 마친다.

 

콜롬보 갈레 페이스

콜롬보 페타 시장(Pettah Market)

페타 시장(Pettah Market)

네곰보

 

 

 

2025년 3월 29일  콜롬보

 

캔디에서 엘라구간 기차길

 

싱할라 왕조의 마지막 수도로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번영을 누렸던 캔디(Kandy),

스리랑카 중부주에 위치한 고산 도시 (해발 약 500m)로 인구는 약 11만 명 정도다.

1815년 영국에 점령되기 전까지 독립을 유지한 저항의 상징 도시였으며,

원래 도시 이름은 센카다가라푸라(Senkadagalapura)였다.

 

캔디(Kandy)의 여행 최적 시기 12~ 4월이며 평균 기온 19~29°C로 습도 낮고 비가 적다.

특히 캔디(Kandy)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불치사(Temple of the Tooth Relic)가 있고 불치사는 부처님의 송곳니 사리를 모시고 있는 사원이다.

현지에서는 스리 달라다 말리가와(Sri Dalada Maligawa)라고 불리며, 전 세계 불교 신자들이 순례를 위해 찾는다.

 

 

콜롬보에서 캔디(Kandy) 까지는 약 4시간 정도 걸리며 요금은 300루피정도 (한화1400원).

버스는 캔디(Kandy)를 향해 꼬불꼬불한 산길을 달리기 시작하다.

가끔 승객이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콜롬보에서 밀리던 차내가 한산해지자 한 젊은 사내가 말을 걸어온다.

서투른 한국어로 한국의 물가나 음악등 이것저것을 묻는다,

나도 처음 가는 캔디에 대하여 질문했다.

캔디(Kandy)가 뭐가 유명하냐고 묻자 이 친구가 서튼 한국말로 절 이란다.

, 인사, 예절? 기우뚱한 나의 생각에 템플이란다.

아마 불치사를 이야기한 것 같다.

내릴 때쯤, 자신은 콜롬보시에서 경찰이며 한국에 관해 관심이 있어 인터넷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며 스리랑카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좋은 여행하기를 기원했다.

캔디 시내에 가까워지자 도심에 어둠이 찾아든다.

버스에서 내려 툭툭이를 타고 캔디 호수인근 숙소로 향하며 캔디와의 첫눈 맞춤을 했다.

 

캔디(Kandy) 2일째,

오늘 일정은 캔디(Kandy)의 유명한 불치사를 방문하고 엘라(Ella)로 간다.

캔디 호수(도시 중심에 위치한 인공 호수)

 

캔디 호수(도시 중심에 위치한 인공 호수)에서 촬영중인 배우들

 

캔디 시내를 순찰중인 경찰들 -멀리 바히라보칸다 비하라 불상이 보인다.(도시를 내려다보는 거대한 불상으로, 일출 명소로 인기 )

 

 

불치사 

 

신에게 바치는 꽃

 

부처님의 송곳니 사리가  안치된 곳

 

부처님의 송곳니 사리가 안치된 사진과 영상

 

 

 

 

불치사 경내에서 사진찍는 불자들

 

숙소에서 걸어서 캔디 호수(도시 중심에 위치한 인공 호수)를 지나 불치사까지는 약 1km,

아름다운 호수를 바라보며 걷노라니 어느새 불치사다.

반바지를 인근 커피숍에서 긴바지로 바꿔 입고 검색대를 거쳐 불치사 경내로 들어간다.

 

현지인은 무료인데 외국인은 입장료를 받는다.

2000루피(환화 약 9000원)정도,

배낭을 맡기고 불치사 내부로  들어가자 많은 불교신도들이 연꽃(Lotus)과 재스민(Jasmine), 프란지파니(Frangipani), 그리고 신에게 바치는 꽃, 히비스커스(Hibiscus)를 재단에 바친다.

옆에서는 불치사 직원들ㅣ 신도들이 바친 꽃들을 열심히 수거해 쓰레기통에 버린다.

바친 꽃의 양이 엄청나다.

불치사에서는 하루에 3번 새벽 5:30, 오전 9:30, 저녁 6:30에 테바바(Thevava)라는 불교 공양의식을 통해 사리함이 공개되고, 신도들과 방문객들이 황금빛 사리함을 잠시 볼 수 있다고 한다.

나는 불교신자가 아니라 사리에 대한 관심도 없고 불치사 내부를 돌아보고 뒤뜰에 위치한 불치사 국제 불교박물관(International Buddhist Museum)으로 향한다.

불치사 국제 불교박물관(International Buddhist Museum)입구

 

불교의 전래도

 

불치사 국제 불교박물관(International Buddhist Museum)의 한국관

 

캔디 호수 인도네시아관

 

 

 

 

불치사 국제 불교박물관(International Buddhist Museum)은 세계 각국의 불교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박물관이다.

세계 불교의 역사( 인도, 중국, 일본, 한국, 태국)등 다양한 국가의 불교 전통과 발전 과정과 전래를 소개하고 있다.

불교 유물 및 사진( 각국의 불상, 경전, 사찰 사진, 의식 도구) 등이 전시돼 있으며

국가별 불교의 차이점과 공통점에 대한 설명이 잘 정리되어 있다.

특히 나는 한국관에 더 관심이 갔다.

불치사를 나와 중앙에 있는 재래시장을 돌아보고 캔디 기차역(William Gopallawa Mawatha))으로 향한다.

캔디시내의 시계탑

 

복권 노점대

 

캔디 재래시장

 

캔디 재래시장

빵차

킨 호텔

옛 감옥

 

툭툭이

 

캔디역

 

 

 

캔디 역

 

 

 

여행중인 가족풍경

 

엘라가는 기자가 들어온다.

 

 

이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열차 노선이라는 캔디(Kandy)에서 엘라(Ella)까지의 기차 여행을 시작한다.

 

푸른 차밭, 안개 낀 산, 폭포와 정글을 지나며 6~7시간 동안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낭만적인 가차여행,

 

엘라(Ella)는 고산지대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지만, 해발 약 1,000m에 자리한 이곳은 차밭, 폭포, 산맥, 그리고 힙한 여행자 거리가 어우러진 세계배낭여행자들의 성지로 불린다고 한다.

 

 

 

기차요금은 일등석 약 7,350루피(환화 약 3400원)로 에어컨이 있다.

2등석은 600루피(한화 2800)로 창문을 열고 달리며 에어컨이 없다, 대신 사진촬영에 최적이다.

시간은 약 6-7시간.

기차는 곧 페라데니야 (Peradeniya)을 지나는데, 이곳은 왕립 식물원이 가까워서 식물 애호가들에게 인기 있는 지역이다.

그리고 감폴라 (Gampola)와 나왈라피티야(Nawalapitiya)를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인 고지대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하고, 차밭과 강이 어우러진 장면들이 창밖으로 보인다.

 감폴라 (Gampola)를 지나면서 보이는 차밭 풍경

 

기차 창밖으로 보이는 차밭 풍경

 

 

 

 

 

 

 

 

 

 

 

 

 

미소가 아름다운 스리랑카 사람들

 

 

 

기차에 매달려 사진찍는 관광객들 

 

 

 

 

 

하푸탈레 기차역

 

 

 

엘라로 가는 버스들

 

 

 

아담스 피크 트레킹의 시작점 되는 하턴 (Hatton)(Hatton) 역을 거쳐 폭포와 차밭이 유명 탈라와 켈레(Talawakele) , 나누오야, 그리고 차밭과 구름 속 산들이 이어지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 하푸탈레~엘라역에 도착한다.

기차를 타고 가는 6-7시간 동안 창밖에는 기후변화가 심하다.

고산 특유의 비가 내리고 안개가 끼다가 밝은 햇살이 보이기를 반복한다.

기차 안에서는 상인들이 와디와디를 외치며 로티(Roti)와 삼볼(Sambol)등 간식을 판다.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한 기차 노선이지만, 속도는 매우 느린 편이다.

기차는 평균 시속 약 20~30km/h로 달리며, 일부 구간에서는 시속 40~50km/h까지 다리기도 한다.

젊은 관광객들은 일부 구간에서 기차에 매달려 사진을 찍고,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면 괴성을 지르기도 한다.

엘라(Ella)에 도착하자 날이 어두워졌다..

역 부근에 여행객들을 유혹하는 화려한 조명과 음악,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을 뒤로하고 숙소를 찾아 일정을 마무리한다..

 

엘라(Ella)에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 일찍 나인 아치 브리지와 리틀 아담스 피크 같은 명소를 돌아볼까 생각하다 다시 캔디(Kandy)로 가는 기차를 선택했다.

 

엘라역

 

 

엘라에서  캔디로

 

 

 

기차풍경

 

 

기차에서 바라본 농촌퐁경

 

 

 

 

 

 

 

 

 

 

 

 

 

 

 

 

 

창밖으로 펼쳐지는 차밭에 수확하는 여인들

 

 

 

 

 

캔디 시내 인근

 

 

 

 

 

어제의 캔디(Kandy)에서 엘라(Ella)까지의 기차여행이 강렬했다.

사진으로 본 나인 아치 부리지는 캔디(Kandy)와 엘라(Ella)의 기차여행의 일부처럼 느껴서였다.

또다시 나는 느림의 미학 속에 창밖으로 펼쳐지는 차밭과 안개, , 고산의 싸늘한 공기 그리고 따스한 태양을 느끼며 캔디(Kandy)로 돌아왔다.

다시 캔디역

 

캔디에서 담불라(Dambulla) 가는 길

 

담불라(Dambulla)가는 길

 

 

캔디(Kandy)에 돌라오자마자 바로 버스터미널에서 이번 스리랑카를 찾게 된 목적의 유적, 스리랑카 중부에 위치한 세계문화유산이자 거대한 바위산 위에 세워진 고대 왕궁 유적 사자 바위(Lion’s Rock)인 시기리야(Sigiriya)로 가기 위해 담불라(Dambulla)행 버스에 올랐다.

거리 74km, 소요시간은 약 2시간 (요금 약 150~200 루피, 에어컨버스는 500루피).

 

 

담불라(Dambulla)에 도착하자 비가 세차게 내린다.

날이 어두워져 터미널 근처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툭툭이를 타고 예약한 숙소로 향한다.

 

 

 

 

 

 

 

 

20253월 26일 담불라(Dambulla)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