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천지(선전 사진)

 

이번 여행은 백두산 천지를 보기 위해 연변으로 간다.

20여 년, 한라산, 지리산등 많은 산을 올라 봤으나 백두산은 높이도 높이 이거니와 단순한 산을 넘어, 민족의 정체성, 신화적 기원, 그리고 지리적·생태적 중심축으로서 깊은 상징성을 지니고 있는 민족의 영산(靈山)이다. 그래서 한 번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천지를 눈으로 꼭 보고 싶었다..

 

백두산은 한민족의 시원(始原)을 상징하는 산으로,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었다는 태백산이 바로 백두산으로 단군이 태어난 곳으로 여겨지며, 고조선·부여·고구려 등 고대 국가의 건국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산이다.

북한에서는 백두혈통의 상징으로, 남한에서는 민족의 근원으로 인식되며, 남북 모두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상징적 공간이다.

 

백두대간의 출발점으로, 한반도 산줄기의 근원지로 여겨지며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산맥의 뿌리다.

압록강, 두만강, 송화강이 백두산에서 발원하며, 동북아시아의 수자원 흐름을 결정짓는 핵심 지점이다.

 

먼저 인천을 출발한 비행기는 인천국제공항(ICN)에서 연변 조선족 자치주 중심 도시인 연길공항(YNJ)까지는 약 1,050km로 약 2시간 10~ 2시간 30분 걸린다.

비행기가 연길 공항에 접근하자 승무원들이 창문을 내리라고 한다. 군사시설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란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빠져나오자 이곳이 중국인가 싶을 정도로 건물에는 커다란 한글과 한자 간판이 병기돼 눈길을 끌고 있다.

말로만 듣던 연변 조선족 자치주 (延边朝鲜族自治州) 연길시 (延吉市)이다

연길 공항

 

 

연길시 (延吉市)를 먼저 소개하면 220만 명(2020년 기준)의 연길시는 민족구성이 조선족 약 32%, 한족 약 64%, 만주족과 몽골족 등 기타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19세기 중반부터 조선인들이 두만강을 넘어 이주, 20세기 초에는 조선인이 지역 인구의 70%을 차지하여 1952년 조선족 자치주로 출발, 1955년 자치주로 승격돼 매년 93일 자치주 성립기념일을 지내고 있으나 한국과 중국의 대도시로 인구유출이 심해 조선자치주의 명색을 근근이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연길시에서 백두산을 가기 위해 차량을 묻자 조선족 아저씨는 여기서 직접 가는 버스는 없고 터미널에서 알아봐야 한다며 한족들이 운영하는 택시를 타지 말고 시내버스를 타고 가라고 알려준다.

공항을 나서 왼쪽으로 100여 m 가면 버스 정류장이 있는데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5에서 내리면 그 앞이 연길 버스터미널이란다.

조선족 아저씨의 말대로 버스를 기다리자 버스가 도착한다 버스요금은 2, 버스는 10여분을 달려 연길역을 지나 5(오 중학교)에 도착한다.

연길터미널에 도착하자 터미널이 설렁하다.

오후 6시경인데.

터미널 옆 조선족 청년여행사의 간판을 보고 들어가자 한 직원이 조선말로 조금만 기다리란다.

7-8명의 직원들이 컴퓨터 앞에서 뭔가 열심히 열중하고 있다.

630분이 지나자 어떤 직원은 박수를 치고 어떤 직원은 인상을 찌푸린다..

뭐 하는 거지 라는 생각일 들 때쯤 직원이 무슨 일 때문에 왔냐고 묻는다.

백두산을 가기 위해서 왔다고 대답하자 언제냐고 물어, 내일 갈 수 있냐고 말하자 웃으며 절대 불가능하다며 조금 전 6시 30분에 백두산 예매에 직원들이 동원돼 인터넷 예매를 했다며 그것도 5일 뒤 백두산 예매표란다.

내일 갈 수 있는 방법을 물의 니 절대 불가란다.

뭐 이런 낭패가??

여행사를 빠져나와 터미널 주차 관리원에게 백두산 이도백하(二道白河)

가는 버스를 묻자 내일 아침 6시에 오란다.

 

 

연길 버스터미널

 

인근 식당에서 연길 냉면(18)을 먹고 터미널 근처 숙소에서 백두산을 가기 위한 연변에서의 첫 일정을 마무리한다.

아침 5시 숙소를 나와 연길 재래시장을 방문하기 위해 택시를 탔다.

10여분쯤 지나자 여기가 연길 서시장이라고 내리란다.

도착하여 보니 문이 굳게 다쳐있다 이곳의 재래시장은 아침 일찍 열리지 않나 보다.

연변시내를 둘러보고 연길대교를 넘어 다시 연길 터미널로 돌아왔다.

 

연변시 풍경

연변 사진관  안내 사진진

연변 서시장 건물

연변 거리 표지판

연변 거리

 

연변일보 건물

 

연길 대교

연길대교에서 바라본 연변 도시풍경

연길대교에서 바라본 연변 도시풍경

 

연길 버스터미널에서 6시에 출발한 버스는 장백산 북파(北坡) 관광의 거점 도시인 이도백하(二道白河)를 향해 달린다.

버스창밖에 펼쳐지는 농촌 풍경은 한국과 다른 것이 없다,

다만 한국처럼 벼가 아닌 옥수수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농촌 풍경

농촌의 상가

옥수수밭

 

이도백하(二道白河)거리

이도백하(二道白河)거리

백두산 매표소 상가들

 

 

3시간여를 달려 이도백하(二道白河)에 도착한다.

이도백하(二道白河)에서 백두산은 가까운 거리의 산 일 것이라고 믿었던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평지에 가까운 이도백하(二道白河)에서 아무리 봐도 백두산을 보이지 않는다.

일단 백두산을 입장하기 위한 표를 구하기 위해 한국에서 20년간 일하고 어제 한국에서 왔다는 이도백하(二道白河)가 고향이라는 버스에서 만난 조선족 아저씨를 데리고 매표소로 갔다.

결과는 불가였다.

이미 표가 매진이라 없다고 한다.

방법을 찾기 위해 모든 노력을 했으나 불가능하단다.

중국말을 구사하는 조선족도 혀를 내 드룬다.

 예전에는 이곳이 조선족 마을이라 100%가 조선족들이었는데 이젠 한족이 80%를 차지하고 있어 자신도 대화가 어렵단다.

10시부터 11시까지 표를 구하지 못해 아침을 굶은 터라 인근식당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조선족 아저씨가 식당주인에게 입장권을 구할 방법을 묻자, 식당 여주인이 가서 적극적으로 구하면 구할 수 있다고 알려준다고 한다.

식사를 마친 조선족 아저씨가 나에게  다시 백두산 매표소를 가자고 한다.

매표소에서 다시 입장권을 구입을 시도한다.

조선족 아저씨왈 이분이 한국에서 와서 5일 동안 백두산 표를 구입하려고 인터넷예매를 시도했으나 한국인이라 구할 수 없었다고 오늘 백두산을 보지 못하면 내일 한국으로 돌아갔다며 중국말로 억지를 부렸다고 한다.

어떻게 된 일이지 오후 2시 정도가 되면 어쩌면 표를 구 할 수 있다고 전화번호를 달란다. 전화가 가면 표가 있고 없으며 없다고 기다리란다.

조선족 아저씨가 본인의 전화번호를 주고 1시간쯤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

이제 지쳤는지 조선족 아저씨도 할 일이 있며 돌아간다고 한다.

매표소 여직원에게 자신은 돌아간다며 나를 남겨둔 채 간다.

오후 1시 30분쯤 되자 매표소 여직원이 조용히 다가와 같이 가잔다.

사무실로 안내해서 260위안(한화 51000)에 입장원을 구입했다.

자기들 말로는 취소자가 생겨 취소자 표라는 듯한 표현을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렵게 구입한 표가 나에게는 감지 덕지하다.

표를 구하자 이제부터는 중국관광객과의 인파전쟁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는 중국인의 새치기와 밀어붙이는 인파로 어렵사리 백두산 버스에 올랐다.

30여분을 밀림 같은 수목사이를 달리자 중간 주차장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목적지를 결정한다..

1코스는 정상, 2코스는 장백폭포다,

정상코스의 인파를 따라 7-8명 정도가 탈 수 있는 4륜구동의 미니지프차를 타고 또다시 20여분 정도를 굽이굽이 산길로 달린다.

밀림 같은 같은 수목지대를 벗어나자 확 트인 산봉우리가 우뚝 서 있다.

버스에서 내리자 2000m 고지대의 찬바람이 온몸을 강타한다.

서둘러 바람막이 옷을 꺼내 입고 보니 아래는 백두산 대평원의 산림이 펼쳐지고 100여 m 위로는 천지를 보려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백두산 북파 주차장

 

 

백두산천지

백두산 아래 

백두산 아래 펼쳐지는 풍경

북파 주차장과 대산림평원

북한쪽 동파

계곡 뒤로 북한방향인듯

100m을 올라 밀려오는 구름 사이와 인파 사이로 백두산 천지를 보인다.

기분 탓일까, 어렵사리 올라와  눈앞에 펼쳐진 백두산은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명산다운 자태을 뽐내고 있다.

정상부에는 직경 약 5 km, 수심 최대 약 850 m 규모의 칼데라인 천지(天池)가 형성되어 있고 주봉인 2,744m 장군봉(将军峰)이 떡 버티고 있다.

 

백두산은 백산, 태백산, 불함산, 장백산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으며, 삼국유사, 제왕운기 등 고대 문헌에 자주 등장하다.

10세기경 밀레니엄 분화로 알려진 대분화가 있었고, 문헌·지질 기록으로 946년 전후(혹은 969±20)로 추정된다. 이 분화는 동북아 전역에 테프라를 낳을 정도로 거대했다고 한다

유네스코가 20243, 이곳 백두산(장백산)을 세계지질공원으로 공식 인증했다.

인파 속에 멋진 백두산을  마음껏 사진을 찍으며 중간주차장으로 내려와 다음 장소인 장백폭포로 향한다.

백두산 천지에서 내려 가는 길

북파 주차장의 선전 사진

내려가는길

백두산천지에서 내려가는 길

백두산천지에서 내려가는 길

백두산천지에서 내려가는 길 이곳부터 산림지대로 접어든다

중간주차장의 선전용 백두산천지 사진

 

장백폭포가는 용암지대

 

장백폭포

 

장백폭포와 관광객

장백폭포옆 작은 폭포

장백폭포에서 내린는 폭포수-송화강으로

장백폭포 용암지대

나무뿌리를 이용한 포토존

장백폭포 안내도

온천물 체험 시설

백두산 일출 선전사진

백두산 암석 설명하는 

 

버스에서 내려 폭포까지 이어지는 탐방로는 계단과 숲길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간중간 유황 온천과 개울을 지나게 된다.

장백폭포는 백두산 천지에서 흘러나온 물이 달문을 지나 천문봉과 용문봉 사이의 완만한 지형을 따라 흐르다가, 68m 높이의 수직 절벽 아래로 떨어지며 형성된 웅장한 폭포다.

 

백두산 북파 입구에서 가까운 곳에 있으며, 화산지형으로 독특한 풍경 속에 백두산 천지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폭포가 장관을 이루며, 이후 송화강으로 흘러들어 간다고 한다.

장백폭포를 구경하며 내려오자 어둠이 깔려온다.

이도백하(二道白河)에 도착하여 고마움을 주었던 조선족 아저씨를 찾아 인시를 하려 했으나 벌써 취침 중이란다.

식당여주인에게 그분이 오시면 맥주라도 대접하라고 맥주값을 주고 숙소로 향한다.

백두산 일정의 첫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숙소 근처에서  저녁을 먹으며 행복한  하루를 마친다.

 

 

2025년 8월 19일  백두산 북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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