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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대마도
    일본 2018. 12. 19. 17:22

     

     

    겨울의 초입으로 향하는 12월 초, 연차를 이용하여 1박2일로 대마도로 향한다.

     

     

    부산항

     

     

    대마도는 일본과 한국을 가르는 대한해협에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까운 외국 영토로 부산 국제여객선터미널에서  배로 약 1시간 10분(히타카츠항)에서 2시간(이즈하라항)이면 도착하는 거리에 위치해있다.

    5개의 바위섬으로 이루어졌으며, 가미아가타[上縣]와 시모아가타[下縣]가 가장 큰 섬이다.

     

     

     

    히타카츠항 입구

     

     

     

     

    히타카츠항

     

     

     

     

    히타카츠항의코비호

     

     

     

     

     

    히타카츠항의 면세점

     

     

     

     

    히타카츠

     

     

     주요도시는 행정 중심지인 이즈하라[嚴原]와 게치[鷄知]이며 주민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한다.

    일본 신화에 따르면 창조 신들이 대마도를 일본 최초의 섬 중 하나로 만들었다고 한다.

     

    대마도는  역사상 한국과 일본 사이의 중계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2세기에서 1868년까지 대마도는 다이묘[大名] 소씨[宗氏]의 봉토였다.

     

    1274, 1281년에 몽골이 일본을 침공했을 때 주민들이 대량학살당했다. 러시아는 1861년에 이 지역의 토지사용권을 확보하려고 했지만 실패로 끝났으며, 1905년 러일전쟁 때 러시아의 발틱 함대가 대마도 해전에서 패했다. 

     

     

    규슈 본토 사가현 가라쓰 시 하도 곶 에서 북서쪽으로 82km 떨어져 있으며, 남동쪽에 위치한 아끼 섬까지의 거리는 47.5km이고,부산과의 거리는 약 49.5km이다. 섬 크기는 남북으로 82km, 동서로 18km이다. 섬 넓이는 약 700km²이며, 섬의 인구는 2017년 기준으로 35,115명 이다. 농경지는 전면적의 3.3%이며, 섬전체 면적의 대부분인 80~90%가 산지이다. 면적은 총 695.9㎢로 제주도 면적의 약 38%, 거제도 면적의 2배 정도이다.

     

     

     

    한국전망대 입구

     

     

     

     

     

    한국전망대에서 부산쪽으로 바라본 해상 자위대건물

     

     

     

     

    한국전망대에서바라본 어촌

     

     

     

     

    조선역관사조난비(1703년 음력 2월 5일 아침, 부산항을 출항한  정사 한천석(韓天錫), 부사 박세양(朴世亮)을 비롯한 108명의 역관사(통역관) 일행이 탄 사선(使船)과 쓰시마번의 책임자 야마가와 사쿠자에몬(山川 作左衛門)이 방문을 위해 보내준 자신의 배와 예인선이 기상이 급변하여 3척 모두 좌초되고 말았다.)

     

     

     

     

    조선역관사조난비와 한국전망대(대마도 최북단 와니우라의 한국전망대는 한국이 가장 가까이 보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한국까지 49.5km, 후쿠오카까지는 132km로 한국에 훨씬 더 가깝다. 날씨가 좋은 날은 부산시의 거리가 보이는 그야말로「국경의 섬」임을 실감케 하는 곳이다. )

     

     

    역사적으로 삼국시대 초에는 대마도를 ‘진도(津島)’라고 불렀다. 고려 말부터 고려에 조공을 하고 쌀 등의 답례를 받아갔다.

    6세기전반 아스카시대에는 쓰시마 국주(對馬島主)가 일본왕부의 임명장을 받기도 하였다. 이러한 관계를 바탕으로 평화 시에는 한반도와 일본 열도 간의 교역을 독점하였으며, 전쟁 시에는 두 나라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곳이 한때 왜구의 소굴이 되자, 1389년  (고려창왕 2년)에는 박위가 대마도를 토벌하였다.

    본래 대마도는 아비루 가문이 지배하였으나, 12세기 고레무네노  시케이사(惟宗重尙)가 아비루가에서 일어난 반란을 평정한 이후, 시게히사의 후손인 소가가 지배하게 되었다.

     

    그 뒤로도 고려와 조선으로부터 관작을 받았으며, 쇼균으로부터 다이묘로 임명을 받는 등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양속관계를 유지하였다.

    조선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외교창구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할 때 가장 먼저 이곳에 도착하였다.

    조선 국왕은 왜구들에 대한 회유책(懷柔策)으로 통상의 편의도 봐주고 또 귀화 정책을 쓰는 등 우대를 해주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이곳을 근거지로 한 왜구의 행패가 여전하자 세종 때인 1419년 세종이 이종무에게 명을 내려 군사 1만 7285명을 동원하여 대마도 원정을 하는 등 강경책을 쓰기도 하였다.

     

     

     

    대마도의 산림

     

     

     

     

    까미자카 공원

     

     

     

     

    까미자카 전망대에서 바라본 대마도 공항

     

     

     

     

     

    대마도 농촌

     

     

     

    대마도 묘지

     

     

     

     

    대마도 농촌

     

     

     

     

    대마도 레미콘 공장

     

     

     

    그러나 대마도 국주의 간청으로 왜인의 통상을 위하여 3포를 개항하고 그들의 편의를 도모했으며, 또한 조선의 국왕이 대마 도주에게 관직을 내려 그들을 조선의 영향력 아래 두기 시작하였다. 그 후에도 조선에 근접한 왜구의 근거지로서, 이것을 무마하려는 한국의 해방정책(海防政策)에 따라 특수한 대접을 받아왔다. 그후에도 조선은 대마도에 대한 영향력을 오래 유지했으나, 임진왜란 때 일본 수군의 근거지가 되면서부터 차츰 영향력이 약화되었다.

     

     

     

     

    에보시다케 전망대(아소만의 리아스식해안)

     

     

     

     

    와타즈미 신사 도리이

     

     

     

     

    와타즈미 신사  (일본 헤이안(平安)시대(794~1185)의 율령 세칙을 적은『엔기시키( 延喜式 )』의「진묘쵸( 神名帳 )」에「馬上郡和多都美神社 」로 표기된 신사가 바로 이곳으로 아주 오랜 역사과 유서를 간직한 곳이다.천신( 天神 )인 히코호호데미노미코토(彦火火出見尊)와 해신( 海神 )인 도요타마히메노미코토(豊玉?命)를 모신 해궁으로 이들에 얽힌 용궁 전설이 남겨져 있다.)

     

     

     

     

     

     

     

    와타즈미신사의 황태자 방문비

     

     

     

     

     

     

     

     

     

     

    에도 시대에는 대마도 후추 번(對馬府中藩)이 설치되었고, 대마도 국주인 소 가문이 쇼균으로부터 다이묘로 임명을 받았다. 메이지 유신을 계기로 1871년에 폐번치현으로 인하여 대마도에는 이즈하라현(嚴原縣)이 설치되었다. 1876년에 나카사키현에 편입되었으며, 소 가문은 화족으로 편입되었다. 대한제국마지막 황녀인 덕혜옹주는 일본 제국의 강요로 소백작가와 정략 결혼을 하기도 했다.

     

     

     

    덕헤옹주 결혼 봉축기념비(조선왕조 26대 고종의 왕녀 덕혜옹주는 1931년 5월 대마도 번주 소 타케유키(宗 武志)백작과 결혼하였다. 이 비는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는 뜻으로 대마도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딸 正惠가 있었으며 1955년 이혼 후 1961년에 귀국한 덕혜옹주는 1989년 창덕궁 낙선재에서 별세하였다. 현 기념비는 2001년 11월에 복원된 것이다.)

     

     

     

     

    팔번궁 신사(대마도의 대표적인 신사 팔번궁(하치만구). 이 신사는 삼한을 정벌한 신공황후를 모신 신사이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그녀는 임신한 몸으로 출병하여 정벌에 나섰으며, 삼한의 항복을 받아냈다고 한다.)

     

     

     

     

     

    나가사키현이 속한 '규슈'(9주)의 명칭은 사이카이도(西海道) 중 지쿠젠 국 · 지쿠고 국 · 히젠 국 · 히고 국 · 부젠 국 · 분고 국 · 휴가 국 · 오스미 국 · 사쓰마 국 총 9국의 총칭이다. 따라서, 규슈에 쓰시마노쿠니(対馬国, 대마도) · 이키노쿠니(壱岐国) · 아마미 제도 · 류큐 제도는 본래 포함되지 않았다. 현재도 일본인들은 대마도섬을 낙도로 취급하고 있다.

     

     

     

     

    만제키세토(万関瀬戸)

     

     

     

     

     

     

    대마도는 원래 하나의 섬이었으나 1672년 21대 당주이자 대마도 후추 번 3대 번주인 소 요시자네(宗義眞) 때 작은 배가 아소만과 대마도 동부를 왕래할 수 있도록 오후나고시(大船越)이라는 운하를 만들어 두 개의 섬으로 나뉘었고

    1900년 일본 제국 해군이 러일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소만(浅茅湾)에 있는 군함을 대마도 동쪽 해상으로 빨리 이동시키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제키세토(万関瀬戸)라 불리는 더 큰 폭의 운하를 만들게 되었다. 만제키세토는 쓰대마도 섬을 위 아래로 나누는 경계로, 대마도 북부를 가미시마(上島), 남부를 시모시마(下島)라 부른다.

     

     

     

     

     

    미우다 해수욕장

    미우다 해수욕장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미우다해수욕장은 와니우라에 위치해 있는데, 일본 100대 해수욕장으로 꼽힌 만큼 맑은 바닷물과 절경을 자랑한다.

     

     

     

    이즈하라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는 이즈하라에는 티아라몰이라는 쇼핑몰이 있다. 1층 대형마트에는 백엔 샵과 새케와라면 등 한국인이 즐겨찾는 식료품들을 살 수 있다. 바로 옆에 위치한 미도리드러그스토어에서는 파스, 소화제 등을 면세 쇼핑으로 살 수 있다.

     이번 대마도여행은 간간이 내리는 비속에 일정이 짧아 아쉬웠지만 부산항으로 향한다.

     

    2018년 1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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