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지리산 천왕봉

7979kyk 2010. 12. 1. 10:39

주말이면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평소 역마살이 끼어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나이 들면서 그 횟수가 줄어들기는 했는데 주말이면 가만히 있지 못 하고 들썩 인다.

그래서 오늘도 산을 향한다.

모든 사람에게 산행이란 언제나 충만한 힘을 갖고 싶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아마도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졸고 있는 감정을  일깨우는데 필요한 활력소일 것이다.

6월 19일 토요일 저녁, 지리산으로 향한다.


지리산!

“높이 1,915m, 동서길이 50㎞, 남북길이 32㎞, 둘레 약 320㎞. 방장산(方丈山)·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한다.

남한에서 2번째로 높은 산이다.

행정구역상 전라남도 구례군, 전라북도 남원군, 경상남도 산청군·함양군·하동군 등 3개도 5개군에 걸쳐 있다.

 1967년 12월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되었으며, 공원 총면적은 440.485㎢로 설악산국립공원의 1.2배, 한라산국립공원의 3배, 속리산국립공원의 1.5배, 가야산국립공원의 7.5배로 규모가 가장 크다.”


이런 지리산을 산행하기위해 한울 산악회 회원 18명은

저녁10시 50분 성남모란을 출발, 새벽3시 30분 경남 산청군 시천면의 중산리 매표소에 도착한다.

장맛비의 우려 속에 도착한 중산리 지리산 첫 대면은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국립공원 관리공단 직원과 주차문제로 벌인 작은 실랑이, 

지리산  산행 첫 시작의 기쁨을 반감하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혹, 이원규 시인의 시처럼

나도 지리산 천왕봉의 일출을 볼 수 있을까 하는 부푼 희망을 안고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 코스는 중산리-법계사-지리산천왕봉-제석봉-장터목-연하봉-삼신봉-촛대봉-세석평전-거림, 총10시간 산행이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이원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 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 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려면

벌 받은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시라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시라


연화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 하면 자살을 꿈꾸는 임아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가수 안치환 씨가 노래하는 이 시를 듣노라면  지리산입산을 위해 목욕재개하고 경건하게 입산해야 하는 사명감 같은 전율을 느끼게 한다.

 또 이 시를 쓴 지리산 시인 이원규씨는 요즘 경향신문 수요일판에  공지영소설가의 지리산 행복학교에  지리산에서 생활하는 또 다른 시인인 박남준 시인, 일명 버들치 시인과 함께 낙장불입 시인으로 소개되고 있으며 지리산 자락에 10년째 살며 오토바이를 타고 지리산 곳곳을 누비며 지리산의 아름다움을 시로 표현 하며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반대등, 환경운동을 벌이고 있다.


등산과 입산

     이원규


산그늘에 얼굴을 가리고 펑펑 울기에 참 좋은 날입니다.

죽기에도 좋고 누군가 태어나기에도 좋은 봄날입니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기 바랍니다.

다만 등산(登山)은 말고 입산(入山)하러 오시길.


 

 등산은 인간의 정복욕과 교만의 길이지만

 입산은 자연과 한 몸이 되는 상생(相生)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경쟁하듯이 지리산 종주를 하다 보면 보이는 것이라곤 앞 사람의 발꿈치뿐이지요.

하지만 입산의 마음으로 계곡의 바위들을 타고 흔적도 없이 오르는 사람에게는 몸속에 이미 지리산이 들어와 있습니다.

유정무정의 뭇 생명들이 곧 나의 거울이자 뿌리가 되는 것이지요.


누구나 정복해야 할 것은 마음속 욕망의 화산(火山)이지 몸 밖의 산이 아닙니다.


산에 들어갈 때엔 바람의 방향을 따라 흥얼흥얼 천천히 가시기 바랍니다.

그것만이 사람도 살고 산짐승도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바람결에 나의 냄새와 노래를 실어 보내면 반달곰이나 독사들도 알아서 길을 내주지요.


 처음엔 향기로운 풀꽃을 따라 갔다가 상선약수(上善若水)의 계곡 물을 따라 내려오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곳에서 그대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등산과 입산.

오늘 우리는  등산인가 입산인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다.


 어둠속 랜턴을 비추며 앞사람의 발꿈치만 바라보며  천왕봉 산행을 시작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벌써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한국천문연구원에 따르면 오늘 산청의 해 뜨는 시간은 5시 13분 27초.

망바위를 지나 법계사에 도착하자 날이 밝아 버렸다.

벌써 산행, 2시간이 지났다는 것이다.

삼 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은 이렇게 허무 하게 무너져 버렸다.

이제 일출은 포기하고 천왕봉 정상도전이다.

이원규 시처럼 나날이 변덕스럽게  우리는 목표를 수정하고, 변하지 않는 천왕봉 정상을 향해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

6시 40분 개선문도착.

 

 

 

 

 

 그리고 천왕봉 300m를 앞두고 남강의 발원지인 천왕샘에서 목을 축이며 부족한 물통에 물을 채운다.

천왕봉 100여m을 앞두고 회원한분이 발에 쥐가 나면서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마침 지나는 산행객이 건 내준  아스피린으로  회복되면서 드디어 7시51분.

 1915m 지리산 정상에 올랐다.


천왕봉정상에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쓰인 표지석이 우리 반긴다.

묵묵히 정상을 지키는 지리산정상의 표지석은 세월만큼이나 변화를 겪었다.

60년대에는 표지석이 나무로 정상에 세웠고  여러 변화를 거쳐 1982년에 민정당  산청.함양 국회의원인 권익현씨가

앞면에는 지리산 천왕봉 1915 m,

뒷면에는 “영남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하다”라고 음각되어 새겼다.

그러니 이것을 못마땅하다고 여긴 산행객의 훼손으로 바뀌기를 여러 차례,

 1990년대 말 지리산국립공원에서 “지금의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 로 고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오늘 지리산 천왕봉  기상여건은  조망는 좋지 않고 강한 바람이 밀려온다.

 

 

여기서 기념촬영을 하고 사진을 찍기 위해 밀려드는 산행객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장터목으로 하산을 시도한다.

장터목으로 향하면서 제석봉 주변에는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이라는 고사목이 세월의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빠른 걸음으로 장터목에 도착한 시간은 9시20분.

 

 

장터목역시 맛 바람을 맞기 가 쉽지 않을 정도로 몹시 심하다.

지리산 수많은 연봉을 조망하기 쉬운 곳 이지만 오늘은 날씨 탓으로 시계가 흐리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세석산장을 향해 내달린다.

 


장터목과 세석산장코스는 어렵지 않고 야산을 걷는 듯, 작은 표고차를 보이며 하산을 돕는다.

오늘 산행날씨는 온도 약 10여도, 안개와 찬바람이 간간히 불어 시계는 좋지 않지만 10시간 이상 종주산행에는 최상의 날씨다.

11시 35분, 세석산장에 도착, 막걸리와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휴식을 취한 뒤 거림을 향해 출발한다.

 

 

 

세석산장에서 거림까지는 6km.

 숲속을 따라 내려 갈수록  지루하게 이어지는 너덜 길로  바위가 미끄러워 엉덩방아를 찌거나 날카로운 바위에 부상을 당하기 쉬어 조심해야 한다.

예상시간인 10시간 보다 1시간이 더 걸렸지만 어느덧 2시 30분, 거림에 도착했다.

 

 


계곡에서 지친 몸과 흠뻑 젖은 몸을 씻으면서 “지리산이란 어떤 산일까”라는 생각이 스친다.

매번 지리산과 주봉인 천왕봉을 오르면서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마약처럼 오르는 산,

지리산은 넓고 깊다.

 수백 번 올라도 잘 모르는 산이 지리산이라고 많은 산행객들이  말한다.

 오르면 오를수록 오묘하여, 종내는 침묵으로 오르게 하는 산이 지리산이다.

지리산은 어머니같이 포근한 산이지만 아무나 범접하지 못 할 끝없이 넓고 깊은 산 이라는 생각이 든다.

계곡에서 몸을 씻으며 또다시 이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씻고 있던 회원에게 웃으면서 탁족보다 좋은 게  무엇인지 아세요? 라고 물으니

 탁족 보다요?  반문한다.

 


탁좆

        이원규


오해하지 마시라


탁좆은 탁족(濯足)의 오자가 아니다

한여름 계곡물에 발만 담그면 탁족이지만

새벽마다 불끈 일출 조짐을 보이는 불의 알까지

푸덩덩 찬물에 말면 탁좆이다


오늘도 피아골로 숨어들어

거풍에 탁좆을 하다

마당바위 찜질방에 드러누워

햇볕 사우나로 젖은 몸 말리는데


어허라, 열두어 걸음 위의 계곡

긴 머리 산중 처녀도 훌러덩

탁좆, 아니 탁십(濯十)을 하는 게 아닌가


몽정기의 소년처럼

후다닥 옷가지를 걸치고

연이어 너덧 개비 담배를 피울 때까지

스물댓 살의 산중 처녀 여여하니

꼭 무슨 죄인처럼

쪼그려 앉아 기다리고 기다릴 뿐


이윽고 젖은 머리카락

산바람 스치는 처자에게

이보씨요, 아가씨! 등산로에서

훤히 보이는 데서 꼭 그래야 쓰겄소?

 

농을 던지자마자

차암, 보는 지가 꼴리지 내가 꼴리나!

장풍일격을 날리며 청설모처럼

통통 바위를 타고 내려가는 게 아닌가

멍하니 불의 알이 오그라지도록

아직 젊은 흙발 대선사를 보긴 보았던 것이다



이날 거림계곡에서  나역시   이 시인 처럼 거풍에 탁좆을 하고 싶은 마음은 꿀떡같으나 웃음을 머그으며  또 다시 지리산을 찾을 것 이라 기약하며  장님 코끼리다리만지기식 자충우돌 지리산천왕봉 산행을 끝냈다.

출처 : 경기성남한울산악회
글쓴이 : 7979kyk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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